미국은 40조 달러 국가부채를 경제성장으로 줄일 수 있을까?

 


미국 국가부채가 40조 달러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큰 빚을 어떻게 갚지?”

그런데 미국 정부가 내놓는 해법은 꼭 “빚을 갚자”가 아닙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경제가 매년 충분히 빠르게 성장한다면 부채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WSJ에 따르면 베선트 장관이 제시한 기준은 약 연 3% 성장입니다.

빚을 줄이는 게 아니라 경제를 더 크게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국가부채에서 중요한 건 빚의 액수만이 아니다

정부 부채를 볼 때 자주 등장하는 숫자가 있습니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입니다.

계산은 단순합니다.

    국가부채 ÷ GDP × 100

예를 들어 어떤 나라의 부채가 100조 원이고 GDP도 100조 원이라면 부채비율은 100%입니다.

그런데 다음 해 부채는 그대로인데 경제 규모가 3% 성장해 GDP가 103조 원이 됐다고 해보겠습니다.

    100 ÷ 103 × 100 = 약 97.1%

정부가 빚을 1원도 갚지 않았는데 부채비율은 100%에서 약 97.1%로 내려갑니다.

이것이 바로 “성장으로 부채를 줄인다”는 말의 기본 원리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부채도 같이 늘어난다

문제는 미국의 부채가 멈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앞의 사례에서 경제가 3% 성장해 GDP가 103이 됐더라도, 정부 부채가 100에서 105로 5% 늘어난다면 어떨까요?

    105 ÷ 103 × 100 = 약 101.9%

경제가 성장했는데도 부채비율은 오히려 높아집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순히 경제가 성장하느냐가 아닙니다.

경제가 커지는 속도가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미국의 현재 상황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

미 의회예산국(CBO)의 2026년 전망을 보면 이 문제가 잘 드러납니다.

CBO는 2026년 미국의 재정적자를 약 1조9천억 달러로 전망했습니다.

또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연방정부 부채는 2026년 GDP의 약 101%에서 2036년에는 120%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뉴스에서 말하는 40조 달러는 미국의 총연방부채(gross federal debt)이고, CBO가 GDP와 비교해 장기 재정 건전성을 분석할 때 주로 사용하는 숫자는 시장 보유 연방부채(debt held by the public)입니다.

서로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두 숫자를 그대로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CBO 전망에서 더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률입니다.

2027년부터 2036년까지 미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연평균 약 1.8%로 예상됩니다.

베선트 장관이 말한 3%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WSJ 역시 미국이 지난 20년 동안 연 3%가 넘는 성장을 기록한 해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미국이 예전처럼 빠르게 성장하기 어려운 이유

경제가 성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일하는 사람이 늘거나,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과거 미국은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시장에 들어오면서 노동력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입니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고령 인구가 늘고 있습니다.

CBO는 미국의 노동력이 2009~2019년에는 연평균 약 0.7% 증가했지만, 2026~2036년에는 약 0.4%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합니다.

사람 수만으로 3% 성장을 만들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가 기대하는 또 하나의 변수가 있습니다.

바로 생산성입니다.



그래서 AI가 국가부채 이야기에도 등장한다

AI가 기업의 업무 효율을 높이면 같은 사람이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생산성 향상이라고 합니다.

베선트 장관이 AI와 미국 제조업 부활을 성장 전략으로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CBO 역시 생성형 AI가 미국의 생산성을 높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효과는 생각보다 급격하지 않습니다.

CBO는 생성형 AI 확산으로 2026~2036년 미국의 총요소생산성(TFP) 증가율이 매년 약 0.1%포인트 높아지고, 그 결과 2036년 경제 규모가 AI 효과가 없었을 때보다 약 1% 더 커질 것으로 추산합니다.

AI가 경제성장을 돕는 것은 맞지만, AI 하나만으로 국가부채 문제가 사라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왜 국채시장도 중요해질까

정부가 계속 적자를 내면 부족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합니다.

국채 발행이 많아질수록 시장이 소화해야 하는 채권도 늘어납니다.

투자자들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면 미국 정부가 부담해야 할 이자 비용도 커집니다.

그러면 다시 재정적자가 커지고 더 많은 국채를 발행해야 할 수 있습니다.

적자 증가 → 국채 발행 증가 → 이자 부담 증가 → 다시 적자 증가

이런 구조가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국가부채 이야기는 단순히 미국 정부의 회계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와 주택담보대출 금리,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 주식의 적정 가치까지 연결됩니다.



앞으로 미국 부채 뉴스를 볼 때 확인할 숫자

앞으로 “미국 국가부채가 사상 최대”라는 뉴스가 나오더라도 부채 총액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다음 네 가지를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실질 GDP 성장률이 얼마나 나오는지.

둘째,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줄어드는지.

셋째, 정부가 부담하는 순이자 비용이 얼마나 빠르게 증가하는지.

넷째,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입니다.

결국 미국이 부채 문제를 성장으로 해결하려면 단순히 경제가 성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경제가 부채보다 더 빠르게 성장해야 합니다.

현재 CBO의 전망은 미국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부채비율은 앞으로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쪽입니다.

그래서 “성장으로 빚을 해결하겠다”는 전략은 가능한 경제 원리이지만, 실제 성공 여부는 성장률과 재정적자를 동시에 봐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오늘 기억할 한 문장

국가부채는 빚의 크기보다, 경제가 그 빚보다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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