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은 왜 투자자에게 '숨은 세금'이라고 불릴까?

 


분명히 이익을 봤는데, 왜 손해 본 기분이 들까?

앞서 실질임금 글에서,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지 않은 명목 숫자만 보면 착시가 생길 수 있다고 다뤘습니다. 이 착시는 월급뿐 아니라 투자에서도 똑같이 벌어집니다. WSJ의 한 투자 칼럼은 이걸 두고 "인플레이션은 알뜰하게 저축하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몰래 털어가는 가장 잔인한 세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분명히 세율표 어디에도 "인플레이션세"라는 항목은 없는데, 왜 이런 표현이 나올까요?



팬텀 게인(phantom gain), 존재하지 않는 이익에 세금을 낸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배당이 없는 주식에 1만 달러를 투자해서 연 10%씩 수익을 내며 20년을 묻어뒀다고 해보겠습니다. 20년 뒤 팔면 자본이득은 5만 7,275달러가 됩니다. 상당한 수익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20년 동안 물가가 매년 3%씩 올랐다면 어떨까요? 이 5만 7,275달러 중 절반 가까이는 실제로 내 구매력이 늘어난 몫이 아니라, 그저 화폐 가치가 떨어진 만큼 숫자만 커진 몫입니다. 이걸 팬텀 게인(phantom gain), 즉 "실질가치는 늘지 않았는데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가짜 이익"이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세법이 이 구분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진짜 이익이든 팬텀 게인이든, 투자자는 명목이익 전체에 대해 자본이득세를 냅니다. 실제로 내 손에 남는 구매력이 늘어나지 않은 부분에도 세금을 내는 셈이니, 사실상 정부가 물가 상승분에 세금을 매기는 것과 다름없는 효과가 생깁니다.



앞서 다룬 실질GDP 개념과 똑같은 원리

이 문제를 이해하는 방식은 앞서 GDP 글에서 다룬 명목GDP와 실질GDP의 관계와 정확히 같습니다. 그때도 물가 효과를 걷어내지 않은 명목 숫자는 실제 상황을 왜곡해서 보여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투자 수익률도 마찬가지입니다. S&P500 지수의 최근 5년 연평균 수익률은 명목상 16.3%로 꽤 화려해 보이지만, 이 기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실질 수익률은 9.5%로 줄어듭니다. 명목 숫자만 보고 "내가 16% 넘게 벌었다"고 자축하면, 실제로 내 구매력이 늘어난 정도를 거의 두 배 가까이 과대평가하는 셈입니다. 참고로 그 이전 10년은 명목 13.8%에서 물가조정 후 11.8%로, 상대적으로 덜 줄어들었습니다. 즉 이 격차 자체가 그 시기 물가 상승 속도에 따라 계속 달라진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둘 만합니다.



왜 이 문제는 잘 고쳐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물가상승률만큼은 세금을 매기지 말자"고 제도를 바꾸면 되지 않을까요? 실제로 미국 의회에서는 자본이득에 물가상승률을 연동해서 과세하자는 논의가 간간이 나옵니다. 이렇게 하면 팬텀 게인 부분은 과세 대상에서 빼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개편이 현실화되기는 어렵습니다. 예일예산연구소 추산에 따르면, 이를 소급 적용할 경우 10년간 세수가 1조 달러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게다가 이 혜택은 소득 상위 계층에 훨씬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세재단 분석을 보면, 상위 20% 납세자가 받는 세제 혜택이 최하위 20% 납세자보다 10배 넘게 큰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수 감소와 혜택 편중이라는 두 가지 걸림돌 때문에, 이 개편 논의는 매번 나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알아야 뭐가 달라질까?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문제를 법 개정으로 당장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점입니다. 투자자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건, 명목수익률이 아니라 물가를 반영한 실질수익률로 내 투자 성과를 평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올해 내 포트폴리오가 8% 올랐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해 물가상승률이 3%였는지 5%였는지에 따라 실제 체감해야 할 성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물가상승률이 5%였다면, 실질적으로는 3%밖에 자산이 불어나지 않은 셈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시장과 연결해보기

이 원리는 앞서 다룬 연금저축·IRP나 ISA 같은 장기 투자 계좌를 생각할 때도 적용됩니다. 수십 년에 걸쳐 자산을 불려나가는 구조인 만큼, 그 기간 동안 쌓인 명목 수익 중 상당 부분이 팬텀 게인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실제 노후 준비 수준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금이나 적금처럼 원금 손실 위험이 없어 보이는 상품도, 물가상승률이 이자율보다 높으면 실질적으로는 구매력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관련 뉴스를 이렇게 보면 됩니다

앞으로 "올해 수익률 몇 % 달성" 같은 투자 관련 소식을 접하면 이렇게 확인해보세요.

"이게 명목수익률일까, 물가를 반영한 실질수익률일까?"

"이 수익에 매겨지는 세금 중, 진짜 이익이 아니라 물가 상승분에 대한 세금은 얼마나 될까?"

이렇게 생각하면, 투자 성과를 눈에 보이는 숫자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인플레이션의 영향까지 함께 계산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습니다.




오늘 기억할 한 문장

세법은 투자 이익 중 진짜 늘어난 부분과 물가 상승으로 숫자만 커진 부분(팬텀 게인)을 구분하지 않고 과세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은 사실상 투자자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추가 세금처럼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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